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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길들여진 맹수, 재규어 XF

이다일 2008. 5. 13. 01:14

영국차 재규어의 이미지는 이름과 같다. 보닛 위에 강렬하게 자리잡은 재규어는 차의 모든것을 말해왔다.

재규어는 강렬한 파워와 세련된 영국차의 이미지로 오랜시간 명성을 이어왔다. 독일과 일본차가 만들어낸 유행에 동참하지 않는 고집으로 아직까지도 독창적 길을 걷고 있는 몇 안되는 자동차인 동시에 유행에 따르지 않은 이유로 대중적 이미지는 점차 쇄락했다.

하지만 최근 재규어의 행보가 심상치않다. 모기업이 포드에서 인도의 타타자동차로 바뀐 이후 국내 법인도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로 독립했다.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가 소개하는 첫 작품, 재규어 XF를 제주도에서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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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표된 재규어 XF는 변화하는 재규어의 첫작품으로 파격에 파격을 더했다. 컨셉트카가 양산차로 발표되면 뭔가 밋밋해지고 무난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지난해 발표됐던 컨셉트카 C-XF가 그대로 나타난것이다. 그것도 전통의 집안 재규어에서 말이다.

보닛위에 뛰어나가는 재규어가 사라졌다. 스포츠세단에서 가끔 보여주던 재규어의 디자인이지만 '이게 재규어야?'라고 물을 정도로 외형은 크게 변했다.

재규어라기 보다 오히려 영국의 스포츠카 '애스톤 마틴'을 연상시킨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애스톤 마틴'을 디자인한 '이안 칼럼'이 재규어를 디자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서 렉서스 GS와 애스턴 마틴을 섞어놓은듯 하다는 관람객들의 의견은 일면 이유있는 관람평일 것이다.

XF는 사람과 공감을 위해 디자인됐다. 길들여진 맹수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마력의 디젤엔진을 논하기 전에 운전석에 올라봤다.

운전석 왼쪽 아래 구석진곳에 스마트키를 꼽고 실내를 둘러봤다. 무언가 허전한듯. 변속래버가 없다. J자 형태의 고전적 재규어 변속기는 사라졌다. 운전석에 들어설때부터 심장박동처럼 깜빡이는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약간의 진동과 함께 시동이 걸린다.

시동을 걸자 오디오 볼륨다이얼같은 변속래버가 위로 올라온다. P-R-N-D를 좌측부터 돌리는 방식이다. 주인을 기다렸다는듯 자동 에어컨에 맞춰 송풍구가 빙글 돌며 나타난다. 실내등은 손이 지나치기만해도 작동한다. '재규어 센스'라는 기능을 넣은 것이다. '잔기능이 많으면 고장도 많을텐데'하는 걱정을 접어두고 제주의 탁 트인 해안도로로 나섰다.

2.7디젤엔진을 장착한 모델은 100km까지 가속시간이 약 8초대. 207마력, 최대토크는 44.4Kg.m이다. BMW 5시리즈, 아우디 A6보다 큰 차체를 강한 토크로 부드럽게 끌어나간다. 스포츠세단의 날카로운 맛은 모자라지만 육중한 몸체를 부드럽게 당기고 나가는 힘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제주도의 아름다운길을 세시간 넘게 달렸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국도에서 가속, 추월, 정속주행을 해봤지만 어느하나 나무랄게 없다. 독일차의 단단하고 날카로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차의 물렁한 느낌은 아니다. 코너는 빠져나갈때는 테크닉이 훌륭한 젊은 카레이서같은 느낌보단 노련한 노장의 연륜을 느끼게 해준다.

운전을 교대하고 뒷좌석으로 옮겼다. 180이 넘는 키에도 불구하고 여유가 있다. 매끄럽게 빠진 C필러 디자인때문에 머리카락을 살짝 스치는것이 신경쓰이긴 하지만 재규어 사상 최고의 공기저항계수 0.29를 생각하면 뛰어난 구성이다.

뒷좌석을 위한 소퍼드리븐이라기 보다 적극적으로 운전하는 오너를 위한 차다. 뒷좌석은 오디오조절, 에어컨조절등이 없다. 앉아있는것 외에는 차에 관여할 수 있는것이 없다. 뒷좌석에 AV시스템을 비롯해 안마기능까지 각종 부가장치들이 붙어있는 일본차에 비하면 무척이나 단순한 구성이다.

2.7 디젤 프리미엄모델이 7천990만원으로 위에서 언급한 동급차종에 비해 높은 가격이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렉서스 GS보다 조금씩 크고 조금더 비싸다. 연비도 12.2km/ℓ로 나쁘지 않다. 길에서 만나는 독일차, 일본차에 식상함을 느낀다면, 또는 길들여진 맹수가 도로를 어떻게 달릴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꼭 한번 타봐야할 차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